"공모전 대상 상품이 인턴 채용"

[진보정의연구소 블로그 기자단] 한국의 'Running of the interns'는 꿈인가

 

 

 

"경력이 있어야 취업이 되죠. 그래서 인턴이 어떤지 알면서도 다들 거기에 목매요."

 

청년에게 인턴은 취업관문을 통과하는 또 하나의 관문이 됐다. 기업은 실무 경력을 쌓는 인턴에게 각종 자격증과 공모전 출전 이력, 수준 높은 외국어 실력 등을 조건으로 요구한다. 청년에게 인턴은 기회이자 경력이지만, 기업에게 인턴은 인적자원을 손쉽게 활용하는 수단인 셈이다. 인턴제도의 확장과 동시에 노동자, 특히 청년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인턴제도가 만든 우리 시대의 '열정페이'에 대해 직접 들어봤다.

 

출판계 정규직과 인턴, 업무 면에서 다를 바 없어

 

경기도 파주의 모 출판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ㅇ씨(25)를 지난 2일 파주출판단지에서 만났다. ㅇ씨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출판사에 채용됐지만, 고용형태에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ㅇ씨는 "계약서에 고용 형태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계약상 아르바이트생인데, 업무 강도는 인턴 수준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인턴으로 일하면서 다른 직원과 차별이 있느냐는 질문에, ㅇ씨는 "직급이 다르니 당연히 차별은 존재한다. 경험이나 숙련도가 다르기 때문에 직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나 지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인턴과 직원이 비슷한 일, 같은 업무량을 할당받는다면?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일을 배우기 위해 들어왔지만, 점점 늘어나는 업무량 때문에 회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또 ㅇ씨는 "편집부에서 일하지만 손이 부족한 업무에 바로바로 투입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다방면의 기술과 능력을 익힐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좋은 경험이지만, 회사에서는 경력직 못지않은 실무 능력을 요구한다"고 했다. 회사의 이런 높은 요구조건과 차별적 업무환경이 인턴을 더 옥죄고 있다. 인턴과 정직원은 업무량과 능률적인 면에서 차이가 거의 없지만, 급여는 약 50~70만 원의 차이가 난다.

 

만약 ㅇ씨가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해도, 인턴으로 일했던 경력은 사라지고 신입사원과 똑같이 채용된다. 이 조건에 비쳐 인턴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책 한 권(경력)을 가지고 이직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출판계 인턴들은 편집보조로 책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길 갈망하며, 인턴 생활을 견딘다.

 

 

                         지난 2일 파주의 모 출판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O씨를 만났다. 진보정의연구소 블로그기자단(김한주)

홍보대행사, 공모전 1등 상품이 '인턴'


그렇다면, 대기업에 종사하는 인턴은 어떨까.

 

일산에 거주하는 ㄱ씨(27)는 대학생 시절, 대형홍보대행사가 주최한 광고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상품으로 '인턴'을 받았다. 서울시 을지로에 있는 이 홍보대행사는 업계에서 가장 크다. 광고홍보를 전공한 학생은 이곳 취업을 제1지망으로 여긴다. 하지만 ㄱ씨는 3개월 동안 인턴 생활을 한 뒤 정규직 전환 기회를 거절하고 회사를 나왔다.

 

ㄱ씨는 공모전 최우수상품으로 다른 대학생들이 바라는 인턴 기회를 얻었지만, 기업은 '값싼 노동력'으로 더 큰 선물을 받은 셈이었다. 인턴은 약 100만 원으로, 정규직 신입사원 월급의 절반 수준이다.

 

ㄱ씨는 오히려 대기업이기 때문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기업이 클수록 수직관계는 강화된다. 직급이 많을수록 결재라인이 많아지기 때문에 회사는 직급에 따라 권위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런 분위기가 '텃세'와 '뒷담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또 업무 이외에 '커뮤니티 관리'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며 "자신이 올린 글에 댓글까지 작성하는 기업들의 비도덕적 마케팅에 환멸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ㄱ씨가 3개월 동안 얻은 것은 대기업의 노동착취와 권위적 세계의 압박감이었다. 인턴 기간이 끝나고 그에게 정규직 전환기회가 왔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2년이 지난 현재 그는 광고·홍보계를 떠나 사회적 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의 인턴제, 사회 전반의 이익효과를 봤을 때 유익하지 않다"

 

성공회대학교 노동대학 하종강 학장은 "인턴은 원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의가 되기 전 수습과정을 밟는 의사를 부르는 말이었다. 이 인턴들은 전문의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없다. 수습기자 또한 마찬가지다. 고용을 전제로 기자 생활을 했다. 인턴은 본래 자신이 직장을 탐색하며 안 맞으면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 학장은 미 연방 대법원 동성결혼 합헌 판결 당시 화제가 된 영상('Running of the interns', 인턴 기자들이 빠른 보도를 위해 판결문을 손에 쥔 채 전력 질주 모습을 담았다)을 보여주며, "이들이 수습 기간이 끝나고 버려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면, 이렇게 전력을 다해 뛰었을까?"라고 말했다.

 

 

                   <Dreview>에 실린 '2015년 올해의 인턴' 모습.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판정을 내린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언론사 인턴 기자들이 판결문을 손에 쥔 채 뛰고 있다. 미 대법원은 법정에 전자기록 장치를 반입할 수 없어, 중요 판결이

                         내려질 때마다 진귀한 'Running of the interns'이 펼쳐진다. Mark Wilson/Getty Images

 

인턴제도가 확대·고착되면서 기업들은 인턴을 '돌려가며' 채용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하 학장은 "인턴을 계속 쓰는 기업이라면, 어차피 필요한 직책이므로 장기고용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인건비를 낮춰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인건비 감축 이외의 방법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단기적으로 반짝 이익만 가져올 뿐, 장기적으로 유익하지도 않다. 인건비 외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국가 경제에도 유익하다."

 

인턴은 '단기고용 비정규직'의 또 다른 형태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비정규직 승무원이 있었으며, '메르스 사태'의 배경에는 의료기관의 규제 완화가 있었다. 이런 사회문제 모두 자본의 단기적 이윤추구가 만든 병폐라고 볼 수 있다.

 

유례없는 청년 실업으로, 청년들은 무급 인턴에도 치열하게 지원하고 있다. '취직을 위한 경력 쌓기' '실무적 경험 제공'을 내세우는 인턴제도의 이면에서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는 변칙적 효과를 얻고, 기업은 인건비 절약의 기회를 얻었다. 이 이외에도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사회에 미치는 효과 또한 미미하다. 앞서 언급한 인턴제 본래 취지에 맞는 제도 실행, 혹은 이에 대안으로써 청년고용의무제(할당제) 확대, 기업규제정책 등의 대책이 근본적인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한국의 'Running of the interns'(완전고용을 전제로 열정을 가지고 노동하는 인턴)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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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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