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차떼기’와 정치개혁
     : 민주노동당, ‘오세훈법’으로 지구당 폐지라는 유탄을 맞다.






2003년 12월 26일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 서정우 변호사가 삼성, LG, 현대차 등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의 불법 정치자금을 모집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불법 자금의 규모도 규모지만 대기업과 한나라당 간에 불법 자금을 전달하는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이전에는 007 가방이나 쇼핑백에 만 원 권을 넣어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대쪽’ 이회창 후보의 모금은 달랐다. 거액의 돈을 실은 차를 통째로 넘기는 방식, 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150억을 탑재한 현금수송차량 키를 전달하는 이른바 ‘턴 키’ 방식의 범죄행각은 마치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졌다.
 
수사를 지휘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쪽은 823억원,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쪽은 120억의 불법 정치자금을 모금했다고 밝혔고 정치인 30여명, 기업인 20여명을 기소했다.


이런 천문학적인 불법 정치자금이 동원되는 고비용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며 정치개혁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4당 합의에 따라 2003년 11월 13일 박세일 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이하 정개협)가 출범했고 국회 정치개혁특위도 이런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이른바 ‘오세훈법’이라고 하는 정치자금법, 정당법, 선거법의 개정판이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은 ‘클린 정치’를 표방하며 정치관계법 개정을 집도했다.


그러나 오세훈이라는 집도의는 민주주의 정당정치에 대한 철학 자체가 부재한 돌팔이였다. 국회 정개특위는 “돈은 묶고 입은 풀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치 불신’에 기초해 정치 자체를 ‘다운사이징’했다. 돈도 묶고 입도 묶은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돈 먹는 하마’로 낙인찍힌 지구당의 전면 폐지였다. 민주노동당과 같이 진성당원제로 운영하고 풀뿌리 주민운동과 깊이 결합하는 방식의 정당에게 지구당 폐지는 대중정당의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소액 정치후원금 10만원까지 세액공제가 되게 한다거나 46석의 비례대표를 56석으로 늘리는 등 부분적인 개선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대중과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공간을 없애버리고 선거시기에도 합동유세를 배제해버림으로써 정치를 대중으로부터 차단해버렸다.


민주노동당은 정개협이 제안한 비례대표의 과감한 확대(100석)와 같이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게 만드는 정치개혁에서는 소극적이면서 정치를 원내 정치로만, 명사 정치로만 한정하려는 ‘오세훈식 돌팔이 시술’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차떼기로 인한 정치권 전반의 불신 여론은 정치의 축소에 손을 들어주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 정의정책연구소

60. “대표는 늘리고 특권을 줄이자”

     :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 국회의원 정수 360명으로 확대 돌직구 제안

 

 

 

 

 

 

 

2015년 3월 15일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가 작심한 듯 의원정수를 360명으로 현행보다 60명 더 늘리자는 폭탄제안을 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가동을 앞두고 새로운 논점을 만든 것이다. 심상정 의원의 이같은 제안에 찬반양론이 뜨거워졌다.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한 국민들의 여론은 고울 리가 없었다. 허구한날 정쟁과 자기 잇속을 챙기는 계파 다툼으로 지새며 민생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에 의원 정수를 더 늘린다는 것은 여론의 몰매를 맞을 짓이었다. 심 의원은 이런 여론의 역풍을 각오했다. 오히려 정의당이라는 진보정당과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심상정’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소명감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유권자 절반에 가까운 표를 사표로 만들어 민심을 왜곡하는 선거제도가 문제라는 지적은 오래된 것이었다. 정당의 득표율만큼 의석을 가져가는 선거제도의 개혁은 정치학자들만이 아니라 정치권 내에서도 이견을 달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2014년 10월 말 헌법재판소에서 현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법안의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져 2015년 12월 31일까지 선거구의 전면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해졌고, 의원 정수 문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 조정 문제가 곧바로 닥칠 현실적인 문제로 되었다.

 

여기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른바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석패율 제도’를 제안하고 나서면서 본격적인 정치개혁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선관위의 개혁안은 의원정수는 그대로 두고 지역구 200, 비례대표 100석으로 조정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지역구 의석이 46석 줄어들게 된다. 지역구에 기득권을 가진 현역 의원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새누리당에서는 오히려 비례의석을 줄이고 지역구 의석을 늘리는 방안이 솔솔 흘러나오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 대표의 대선후보 공약이 선관위와 같은 ‘권역별비례대표제’였음에도 꿀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심상정 의원은 이처럼 기득권 정당에서 지역구 축소를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국회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정치개혁안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국회의원 특권은 줄이고 대표는 증원하는 것’이었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원 수는 OECD 평균보다 30~60명 부족하다. 서울대 조국 교수의 지적대로 “국회의원과 몇몇 보좌관이 상임위 소관 평균 10개 정부기관을 조사, 견제하는 황당한 상황”인 것이다. 심 의원은 세비 20% 삭감, 운전비서 폐지, 해외출장 등 의원활동의 투명한 개혁을 통해 국회 운영에 드는 총비용을 동결하면서도 의원 정수를 늘릴 수 있다주장을 펼쳤다. 조국 교수도 이에 동조해 국회의원의 비업무적 특권은 줄이고 ‘업무적 특권’과 질박한 ‘동료 시민성’을 갖춘 의원이 많아져야 민주주의도 행정부와 재벌에 대한 견제도 강화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사실 정치를 ‘비용 절감’이라는 경제논리로 보면 정치의 축소가 불가피하다. 국세를 낭비하지 않고 비용을 절감하려면 극단적으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없애는 게 낫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민의를 대변하는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행정 독재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예로 행정부의 일방 독주에 의해 해외 자원외교에서 40조의 혈세가 증발된 것만 보더라도 과연 민의의 대표기관을 약화시키는 것이 반드시 국세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길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보다 훨씬 많은 국회의원을 갖고 있는 민주주의 선진국이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것을 보면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이 국민의 후생 복리를 증진시키는 길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표를 축소하고 정치의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의 이면에는 견제 받지 않으려는 행정부와 재벌의 숨은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심 의원의 총비용 동결과 대표의 확대는 ‘고육지책’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의원정수 확대 제안이 곧바로 여론의 역풍을 맞는 상황에서는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육참골단’의 방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 정의정책연구소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