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칼럼2015.07.14 17:09

 

 

 

 

 

 

 

 

심은정 (진보정의연구소 연구위원)


동성결혼 합법화, 한국에서도 이루어지나



퀴어 축제 이후 한국에서는 최근 3주 동안 이른바 '동성애' 논란이 일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성소수자의 ‘평등 권리주장’은 ‘혐오할 수 있는 권리’로, '사랑'은 '죄'로, ‘축제’는 ‘이익집단의 놀이판’으로 왜곡되며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당당한 목소리는 터져 나왔다. 지난 6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진행된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의 첫 심리가 바로 그것이다. 소송의 주인공은 2013년 9월 청계천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이다. 국내 최초 '동성 결혼 혼인신고 소송'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 첫 재판은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 결혼 합헌 결정으로 한국 법조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지에 대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미국 동성결혼 합헌, 대중의 지지가 핵심 요인


국내에서는 처음 열리는 동성 결혼 인정 소송은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미국에선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미국 내에서 결혼제도는 연방정부가 아닌 주 정부가 그 권한을 가짐으로써,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소송과 논쟁은 주 별로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다. 2004년 5월 17일, 메사추세스 주에서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또 전 세계적으로는 6번째로 동성 결혼이 합법화가 이루어졌다. 그 후 지난 달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 합법화가 인정받기까지는 사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조사한 미국 내 대중의 동성결혼 지지도는 2009년 37%에서 2015년 57%로 증가했다. 또 1988년 미국 종합사회조사에서 동성혼 권리에 동의하는 응답자는 불과 12%였지만, 20년 만인 2008년에는 세 배 넘게 증가해 39%에 이르렀다. 이 후, 2015년 갤럽 조사에서 동성결혼 지지도는 60%로 집계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한 세대를 30년으로 본다면, 한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동성결혼 지지 여론이 다섯 배가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방증이라도 하듯, 동성결혼 합헌 판결 당시,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대중이 동성 결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언급했다. 동성결혼 합헌 결정 이후, 미국 주요 기업들 대부분이 회사로고와 광고를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으로 변경하는 등 적극적으로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것은 주 별로 인정되던 동성결혼의 이번 합헌 결정이 2000년대부터 미국 내 끊임없이 이루어지던 소송뿐 아니라 대중의 지지가 한 몫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성결혼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어떻게 증가하는가?


동성결혼 합법화의 대중의 지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는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왔다. 그동안 연령, 교육수준, 그리고 동성애자와의 접촉이 동성결혼 지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강조돼 왔다. 하지만 과연 나이가 어릴수록, 많이 배울수록, 그리고 동성애자가 늘어날수록 동성애에 대한 지지가 증가하는 것일까?


그림1. 세대별 동성결혼 지지도

먼저, 연령의 경우, 낮은 연령이 높은 연령에 비해 진보적인 이념성향이 있기 때문에, 연령이 동성결혼 지지에 주요 변수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림1]과 같이 최근 조사된 동성결혼 지지도 추이는 연령과 무관하게 2005년부터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교육수준이 동성결혼 지지와 긍정적인 관계를 가지는 요인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많이 배울수록,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이른바 ‘세련된 판단’을 통해 동성 결혼 지지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한국의 경우에는 적실성이 떨어진다. 우리나라 교육열은 미국 못지않을 뿐만 아니라 대학 진학률도 OECD국가 평균 수치를 훌쩍 넘는다. 하지만 높은 교육수준을 대표하는 대학의 진학률이 높아지고, 고학력자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동성애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와의 사회적 접촉이 동성결혼 지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접촉을 통해 상대방을 알아가고 그 속에서 습득하는 새로운 정보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줄인다는 것이다. 또 그것이 결국엔 스스로가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동성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지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설명에 따르면, 개인의 사회적 네트워크에 성소수자들이 급격하게 유입되어야한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동성결혼에 관한 대중의 지지가 증가한 2000년대 이후 이에 맞춰 급격히 증가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많은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했다고 해도 동성 결혼 지지자가 10년 사이 대략 20%p 증가했다는 것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사회적 접촉 하나만을 가지고 미국 내 급증한 동성 결혼 지지도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회적 공간의 확장, 동성애에 대한 ‘공감’ 폭 넓혀


위 세 가지 변수를 고려하여 미국 여론의 동성결혼 지지도를 경험적으로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동성결혼 지지에 교육과 사회적 접촉이라는 두 변수가 ‘동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동성결혼에 대한 지지가 순전히 “많이 배워서”도 아니며 또 단순히 “성소수자를 접해서”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교육”이 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 장(場)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냄으로써 성소수자에 관한 “사회적 공간”의 확장이 대중의 지지에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한다. 


한국에도 수도권의 거의 모든 대학에 성소수자들을 위한 모임이 있다. 그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어린 시선에 숨죽인 채 아무도 모르는 지하조직을 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기 위해, 또 그들이 받고 있는 이유 없는 차별들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 적극적인 사업들을 벌인다. 그렇게 양지화 되어가는 성소수자의 모임은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과 접촉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준다. 내 주변은 아니더라도, 친구의 친구가 성소수자일 수 있고, 성소수자들의 모임이 양성화되면서 다양한 주체들을 접하게 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 즉, 성소수자에 관한 ‘사회적 공간’이 확장됨에 따라 성소수자에 대한 ‘공감’의 폭 역시 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내 점점 더 확대되는 고학력시대 그리고 훨씬 더 다양해지는 개인의 네트워크 경로까지 고려한다면,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상은 다만 미국 내 독특한 현상으로만 남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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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소 칼럼2015.06.30 13:53



김정순 (진보정의연구소 사무국장)
   

지난 6월 26일 미국연방대법원은 동성커플의 결혼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두고 ‘미국의 승리’라는 성명을 냈다. 뉴스를 접하며 나는 그 나라의 인권 지수에 대해 부러움이 일었다. 더구나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동안 고단했을 당사자들을 호명하면서 모두의 승리라고 말할 때, 그 유연함이 한없이 부러웠다.


우리나라도 느리지만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난 주말동안 페이스북 페친들의 프로필 사진이 무지개 색깔로 덧씌워지는 것을 목격했다. 제16회 퀴어문화제를 축하하거나 동참 및 지지의 의미가 아니었나 미루어 짐작해본다. 2000년 이틀간 2,000명이 참가한 퀴어문화제는 횟수를 거듭하면서 올해는 3주간 2만 여명 이상이 참가하여 축제를 함께 즐겼다. 동성애자인 한 남성은 ‘엄마, 나 게이야’라는 피켓을 들고 나와 부모님께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알리는 행동을 하는 등 참가자들은 다양한 소품들을 활용하여 각자의 방식대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신선했다. 비록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보는 그날의 풍경은 다채롭고 자연스럽고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문화제를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제일 먼저 머리를 스친 건 ‘이제는 아까운 죽음이 줄어들 수 있겠구나’하는 것이었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동성애자들은 사회적 차별에 못 이겨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곤 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는 그들에게 획일적인 선택만을 강요했다. 선택을 하려야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래서 죽음으로서 저항했던 것이다. 올해 퀴어문화제의 슬로건이 ‘사랑과 저항’이었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저항’이라는 단어와 나란히 쓰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가슴이 아렸다. 수 년, 수십 년에 걸친 그들의 절규와 비명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오랫동안 비명조차 지르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문화제의 함성에 맞서 북을 치고, 장구를 치고, 춤을 추며 소음으로 덮어버리려 하는 세력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한복을 차려입고 손에는 태극기를 흔들면서 자신들의 행동이 곧 애국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나는 혐오를 숨기지 않는 채 확신에 찬 얼굴로 고함을 지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지난 28일 4 ·16연대(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가 공식 발족을 선언했다. ‘끝까지 잊지 않겠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끝까지 행동 하겠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염원이 하나로 모아진 모임이다. 부박한 자본의 논리에 어이없이 목숨을 빼앗긴 세월호 유가족 및 국민연대의 요구는 아주 단순명료했다. 먼저 400일이 넘도록 여전히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있는 사람들을 수습하라는 것, 그리고 참사의 진실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전에 실종자 가족들이 나눠주는 전단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우리는 유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에 이토록 가슴 아픈 염원이 있을 수 있을까? 그 전단을 받아들고 가슴이 턱 막혀서 한동안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이 기억난다.


오늘도 세월호 유가족들은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사회, 인권을 실현하자고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 나와 있다. 많은 사람들 및 세력들은 그들에게 이제 그만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400일이 넘도록 사랑하는 내 자식이, 내 어머니가, 내 아버지가 물속에 잠겨있는데 어떻게 그만할 수 있겠는가? 국가가 제대로 구해주지도 못했으면서 그 가족들에게 이제 비명을 멈추고 울음을 거두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그 정도로 몰염치 했던가?


노동현장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턴가 100일 이상 하지 않는 단식은 단식도 아니며 400일 이상 하지 않는 고공농성은 고공농성이 아니며 800일 이상 하지 않는 투쟁은 투쟁도 아니라는 우스겟말이 돌고 있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이 뱉어내는 비명을 들으려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을지도 모른다.


소수자 및 약자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방법은 많지 않다. 모여서 요구해야 하고 그도 안 되면 피켓을 들어야 하고 그도 안 되면 가두행진도 해야 하고 그도 안 되면 청와대 앞에라도 찾아가 고함이라도 질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잠깐의 소란스러움이, 그 잠깐의 지체가 생명을 잃는 일보다 중한 것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할 수 없다면 그들이 뱉어내는 비명마저도 그만하라고 요구하는 몰염치는 거둬들여야 한다. 그들의 억센 고함과 욕설은 그들이 뱉어내는 비명에 다름 아니라는 어느 목사의 말씀이 새겨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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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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