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칼럼2016.07.20 11:40


[미래정치센터-경향신문 공동게재] 공무원, '머슴'아닌 '동료시민'



교육부의 한 고위공무원의 막말 논란이 결국 해당 공무원에 대한 파면 결정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민주주의 시민들을 ·돼지에 비유하고 신분제가 필요하다는 식의 말은 현재 우리 사회 고위층들의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여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연이어 최근 천민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내세우며 아예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한 경제단체 산하 연구원의 주장은 단순히 뒷맛이 쓰다고 표현하기에도 모자란다.

 

 

지난 한 달여간 많은 시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 가지 유감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 당사자가 사용한 표현과 인식의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다보니 이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풍자 역시 거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감히 머슴이 주인에게 개·돼지라 하다니!”와 같은 조롱식 반박이었다. 사회지도층의 천박한 인식과 언행에 분노한 시민들의 풍자로서 이 정도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사건을 차분하게 정돈하고 사건이 의미하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주는 역할을 해야 할 언론과 정치지도자들 역시 비슷한 표현과 시각을 서슴없이 꺼내는 것은 유감스러운 장면이었다.

 

여론과 별도로 언론과 정치는 날것의 조롱보다는 사건의 본질과 대안에 대해 논하는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일각의 조롱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100만명에 달하는 공무원들은 주인에 해당하는 시민들에게 복종하고 봉사만 해야 하는 머슴과 같은 존재들이어야만 하는가? 민주주의는 모두가 시민으로서의 책무를 지니고 공동체를 더 낫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공무원이라는 존재는 사회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필요한 관료체제를 움직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또 한편 민주주의 사회의 중요한 동료시민들이다. 그들에게도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그에 따르는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들에게도 동료시민에 대한 시민적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누구나 정치와 행정에 참여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 고대 아테네의 예에서 보듯이 민주주의의 원리는 동료시민에 대한 책무와 권리의 인정에서 출발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거대한 국가관료체제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성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체제 내에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시민으로서의 공무원들에 대한 태도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오랜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한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모두 공무원들을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머슴아니면 차갑고 권위적인 관료로만 상정해왔다. 이는 여야, 진보와 보수를 떠나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만나본 다수의 현장 공무원들은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사회공익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권력과 돈을 가진 소수의 사익에 행정이 좌지우지되는 것에 분개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무려 100만명에 가까운 공무원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공익을 수호하는 소중한 동료시민들로서의 존재다. 책임 있는 정치집단이라면 오히려 그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기울였는지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정당가입, 노동권마저 제한하는 현행법,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지원에 대해 선거법 위반을 들먹이는 보수적 판결, 새로운 시도를 할수록 인사승진에서 손해 보고 권력에 줄 서게 만드는 경쟁주의 성과제도 등은 정직한 다수 공무원들의 고민과 목소리를 빼앗고 오직 영혼이 없는 존재로 남아있기를 강요하는 것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적 책무를 망각한 소수의 공무원들이 선민의식에 빠지고 천박한 언행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일간지 신문 한 귀퉁이에 넘쳐나는 사회복지, 소방공무원들의 영웅적 일화나 미담 사례는 관청의 홍보자료에만 그친다. 그들이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 소명의식을 느끼게 만들 어떤 제도와 대안도 없이 미담만을 조명하고 왜 너희는 저렇게 못하냐고 힐난하고 그들을 머슴이나 영혼이 없는 존재로 비하하는 것은 정치권력과 사회지도층의 무책임함이다. 공무원은 미담의 주인공들도 충성스러운 머슴도 아니다. 그들은 우리 공동체를 함께 가꾸어나가는 동료시민이어야 한다. 이제 그들에게 복종이 아니라 동료시민으로서의 책무를 요구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낡은 제도와 악습을 바꾸는 데 눈길을 돌리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92113035&code=990100#csidx44ede2c387e8655ae009291dc42e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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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 정의정책연구소

<취업난 기획기사1> 인문대 취업위기의 원인과 해결책

 

전공 살리기가 막막하니까 다들 공무원 학원으로 몰리는 거죠 

 

 

인문대 취업 현황, 통계자료

 

연일 매스컴에서 인문대학생들의 취업 위기를 말하고 있다. ‘인구론(인문대 학생 90% 놀고 있다는 신조어)’이라는 말과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신조어)’이라는 말이 SNS에서 떠도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09년 4년제 대학 졸업자 전공계열별 취업률을 살펴보면, 인문계는 취업률은 64.2%, 정규직 취업률은 30.2%로 교육계 취업률 58.9%, 정규직 취업률 26.9% 다음으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의학계는 취업률 89.7%, 정규직 취업률 53%로 가장 높았으며, 공학계가 취업률 71.1%, 정규직 취업률 52.9%로 2번째로 높았다. 2013년 계열별 취업률을 보아도 인문계열은 48.1%로 예체능 45% 다음으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대전에 있는 한 대학교의 인문대학 취업률 평균은 44.53%로 41%를 기록한 사회과학대학보다는 조금 높지만, 70%에 육박하는 공과대학과 50%의 경상대학 보다는 낮은 수치이다.

 

‘왜’ 인문대 학생들은 취업이 어려운 것일까?

 

1. 개인적 원인

 

첫 번째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인문대의 취업위기를 살펴보자. 6월의 마지막 주말, 충청남도에 있는 한 대학의 도서관은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이 많이 있다. 그중 인문대학 고고학과 4학년이며 휴학을 계획하는 조모 군(27)을 만났다. 그는 “졸업이 일 년도 남지 않았는데, 취업의 문이 높기만 해요. 그동안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서 학점은 그럭저럭 받아서 장학금도 몇 번 받았는데, 현실은 녹록하지 않네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휴학하는 이유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그동안 방학이면 발굴 현장으로 야외 필드학습을 나갔어요. 맹목적으로 대학원 가자는 심정으로 고고학 전공에 몰두해 보기도 했지만 다 허상이었어요. 막상 취업을 준비하려고 보니까 해 논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남들은 다 있는 어학 점수나 자격증을 획득하려니 시간이 없어서 휴학을 결심하게 되었죠.” 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의 상황은 남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전공을 진지하게 탐구하려는 배포가 부족하다. 일찌감치 취업의 진로를 선택하여 매진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인문대가 취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학교생활 동안 듣고도 ‘설마 내 이야기는 아니겠지.’ 자위하며 허송세월한 것이다. 더군다나 취업에 대해서 구체성이 전혀 없다. 어느 기관, 어느 기업에 취직하고 싶은지에 대한 선호가 없고 어떤 직종에 근무하고 싶은지도 모호하다. 취업 그 자체에 몰두하기보다는 남들이 하고 있다고 자기도 하는 식의 스펙 쌓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인문대 학생들은 취업을 희망하고 있지만. 취업에 대한 의지는 없다.


2. 사회적 원인

 

두 번째로 사회적 차원에서 인문대 취업 위기를 살펴보면, 인문대 전공생을 위한 일자리가 없다. 물질문명이 요구하는 가치와 인문학 고유의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에 인문학 전문직을 위한 정규직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반적인 기업에서 중시되는 평가의 기준은 수치화, 등급화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계량화시킬 수 없는 가치를 중시하는 인문학적인 지향이 평가 불가능하다는 막연함으로 인식되는 애로사항이 발생한다. 취업 시장에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인문학도의 약세는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하고 있다. 


 

4학년인 김모 군(24)은 상반기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기업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한다곤 하지만, 정작 취업 지원하기 위한 채용 공고를 보면 인문학 전공자를 우대하는 직군이 없어 결국 인문학 전공자는 전공 무관이라고 적혀있는 직군에 밖에 지원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공무원 준비를 하는 허모 군(28)은 “대학교 앞에 있는 공무원 학원에 가면 인문대 건물에서 보던 얼굴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그들도 저와 비슷할 거예요. 전공 살려서 취직할 길이 막막하니까 다들 공무원 시험 보려고 학원으로 몰리는 거죠.”라고 말한다.


2014년 10월 23일 경향신문에서 인문대 학생들의 취업 위기를 다룬 기획기사에서도 ‘삼성그룹 직무적성검사(SSAT)나 현대자동차그룹 인·적성 그룹에서 인문학과 관련된 문제가 나왔지만, 정작 채용 현장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는 엔지니어를 뽑고 있다.’ 고 지적하고 있다. 이렇듯 민간기업 취업이 갈수록 힘들어져 인문계열 출신 대부분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청년층(20-29세) 취업준비 생은 96만 명으로 이 중 31만9000명(33%)이 공무원시험 준비생이다. 학원가에서는 수험생 상당수가 인문계열 졸업생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해결책은 없는가?

 

1. 개인적 해결책

 

그렇다면 취업 희망과 취업 의지는 어떻게 다른가? 취업 희망만 있는 학생은 취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다. 그간 나태하고 게으른 시간을 보내다가 취업이 바로 앞에 닥치자, 남들을 따라서 어학 점수 올리고, 스펙을 쌓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반면 취업 의지가 있는 학생은 겸손하게 차근차근 준비한다. 학점이나 토익 점수나 각종 자격증 같은 스펙은 미리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누적한다. 


취업 의지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고 자신이 취업하고자 하는 직종 및 기관에 대한 적정 수준의 범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취업 희망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에 대한 진단, 직종 및 기관에 관한 정보가 없이 막연하게 취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다. 이 두 명의 사람이 동시에 입사원서를 내고 면접을 본다면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다를 것이며 이에 반응하는 인사담당자의 태도도 천지 차이일 것이다. 


이렇듯 취업에 대한 인식에 차이에서 취업 위기가 발생한다. 해결책은 취업을 희망만 할 것이 아니라 취업 의지를 갖춰야 한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안도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취업 그 자체에 몰두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4학년이 돼서 부랴부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자신의 진로에 대해 미리 충분히 모색한 이후 목표를 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사회적 해결책

 

사회적 측면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해 보자. ‘대학은 원래 취업시키기를 위한 교육기관은 아니다.’ 라는 명제는 사실 대학을 졸업하면 누구나 취업이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취업 환경이 바뀌었으면 대학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충청남도에 있는 한 대학에서는 진로설계나 미래설계상담과 같은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신설하고 있지만, 과연 이런 과목이 취업에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고용 노동부에서 대학을 통해서 운영하는 사업인 청년취업아카데미에 프로그램이 있다. 이에 참여했던 현재는 경상남도에 있는 대학원에 재학 중인 방모 양(24)은 “4학년 여름방학 기간에 참여했어요. 트리즈 과정, 자기소개서, 면접, 이미지트레이닝 등과 같은 것을 수강했어요. 참여했던 인원 중 상당한 비중이 인문대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중소기업과 취업을 연결해 주는데 대부분 학생이 여기를 통해서 취업하지 않았어요. 물론 저도 여기를 통해서 취업하지 않았고 현재는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라며 말했다. 대부분 학생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취업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실효성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대학에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교수 개인들은 취업에 대한 고민보다는 평생을 학문을 연구하는 일에 몸을 바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교수들은 취업과 관련된 실무적인 경험이 부족하다. 특히 이는 다른 학과보다 인문대가 가장 심하다. 또한, 지식과 인성을 가르쳐야 하는 대학이 시장 논리에만 부합한다면, 직업 훈련소를 바뀔 위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대학 자체에서도 많은 딜레마가 존재한다. 


최근 이런 대학의 딜레마에 관한 대안으로, 2014년 10월 29일 경향신문은 교육의 공공성을 높이는 쪽으로 대학체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체 대학의 82%를 차지하는 사립대를 줄이고, 국공립대의 비중을 전체의 절반 가까이 높이고 기초학문은 공립대가, 응용학문은 사립대가 맡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는 “부실·부패 사립대는 공적 지원을 통해 법인과 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공영형 대학’으로 바꾸고, 국공립·사립·공영형 사립이 교육 중심, 연구 중심, 직업교육 중심, 평생교육 중심 등으로 특성화해야 한다고”고 말했다.


기업은 인문학의 가능성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은 바로 먹는 가공식품이 아니라 발효식품이다. 계량화된 가치를 바탕으로 벌어지는 극심한 취업경쟁은 대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무장되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사회초년생들을 채용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어떤 조직에 편입되면, 그 조직이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경쟁’보다는 ‘협력과 배려’ 라는 가치가 요구된다. 기업은 근시안적 채용을 버리고 긴 안목으로 인문대생을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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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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