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주거 고시촌 기획기사>

신림동 고시촌의 과거와 오늘, 각박해져가는 현실의 민낯

 

신림동 고시촌으로 가는 길은,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공간의 역사와 이 공간이 대변하는 시대의 현실, 그리고 이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만큼이나 고달프다.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든 2호선을 타고서 서울대입구역을 나와,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5515번 버스를 20여분 정도 타고 내리면, 높고 험한 고시촌의 언덕이 기다리고 있다. 버스의 사람들 사이에 끼어 이미 땀을 뻘뻘 흘려 지친 몸은, 고시촌의 언덕을 오르며 더위의 극한을 맛본다. 언덕은 마치 한여름의 거대한 사구와도 같다. 어쩌면 여름의 고시촌 언덕은 양호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여름의 사구는 겨울만 되면 미끄럽고 오르기 힘든 빙산으로 변하기 일쑤다.

 

 

높고 험한 신림동 고시촌의 언덕                               김현우 기자

 

언덕 위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온갖 ‘서원’, ‘고시원’, ‘고시텔’, ‘리빙텔’, ‘미니원룸’과 ‘리빙하우스’이다. 제각기 달고 있는 간판은 다르지만, 이 온갖 ‘원’과 ‘텔’과 ‘룸’, 그리고 심지어 ‘하우스’가 갖는 의미는 모두 같다. 바로 ‘작고 열악한 주거 공간’이다. 언덕은 모두 똑같이 생긴 이 진갈색 벽돌 고시원 건물들로 가득하다. 건물들 벽 위에는, 숨이라도 제대로 쉬어질까 싶을 만큼 조그마한 창문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다.


수많은 주거 공간 사이사이에는 각종 분식집과 밥집이 위치해 있다. 모두 오천원 가량의 싼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들이다. 식당 옆으로는 세탁소와 PC방, 카페 등이 간간히 눈에 띈다. 고시촌의 언덕은 수많은 건물들로 인해 각종 복잡한 골목길들로 분할되어있다. 골목길을 따라 크고 흉측한 회색 전봇대가 박혀있고, 전봇대 위의 전신줄은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며 복잡하게 엉켜있다. 언덕 위의 주거공간과 식당들, 최소한의 편의시설과 그 사이 사이에 난잡하게 펼쳐져 있는 골목길, 그리고 엉켜있는 있는 전신줄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보는 ‘신림동 고시촌’의 모습이다.

 

 

언덕 위의 주거공간과 식당들. 최소한의 편의시설과 그 사이사이에 난잡하게

펼쳐져 있는 골목길, 그리고 엉켜있는 전신줄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보는

'신림동 고시촌'의 모습이다.                                            김현우 기자

 

 

신림동 고시촌의 과거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은 1960년대 중반 도시의 재개발사업에 희생당한 철거민들이 거주하던 일종의 ‘달동네’였다. 그러나 신림동은 1975년 서울대학교가 이전해 오면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대학생들과 교직원들이 거주하고 생활하는 ‘대학동네’로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이전과 맞물려, 신림동에서는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뤄졌고, 신림동은 중산층이 거주하는 신흥 주택지로 변모하였다.

198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서울대생이 관악산 기슭의 여러 하숙집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서 사법고시 합격생이 많아지자 이 지역에 대한 명성이 각지로 퍼져 나갔고 점차 타 지역의 고시생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이른바 ‘1기 고시촌 시대’의 개막이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은 ‘2기 고시촌 시대’라고 명명된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시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시학원과 고시전문 서점들이 신림동의 중심가인 상업은행 주변에 생겨나기 시작했고, 고시생들은 이에 맞춰 신축된 신림동의 고시원에 입주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사법고시만이 아니라 행정고시와 외무고시 그리고 공인회계사를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신림동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해오면서 신림동은 본격적인 ‘고시촌’으로 성장하였다. 기존의 주택들이 헐리고 고시생을 위한 고시원들이 신축되었고, 상권 또한 고시생들을 상대로 하는 업종으로 전환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1999년, 신림9동 전체주민 2만 6,043명 중 서울대 하숙생 및 고시생이 1만 5000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신림동 고시촌’은 서울 시내의 전무후무한 고시촌으로 성장하였다.

 

신림동 고시촌의 현재

 

오늘날 신림동 고시촌은 예전과 같은 명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여전히 많은 고시생들이 신림동에서 고시공부를 하고 있지만, ‘사법고시 폐지’와 같은 사회적 변화에 맞물려 신림동 고시촌도 변화하고 있다. 사법고시 폐지와 로스쿨 설립에 따라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많은 고시생들은 신림동을 떠났다. 이에 따라 사법고시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었던 고시원이나 서점, 독서실들은 과거에 비해 영업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신림동 고시촌은 여전히 많은 고시생과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로 붐비고 있다. 사법고시 준비생들이 고시촌을 떠남에 따라,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과 공시생들이 그 빈자리를 메꾼 것이다.


과거 고시촌을 채웠던 고시생들의 대부분이 사법고시 준비생이었다면, 오늘날 고시촌의 고시생들은 행정고시, 국립외교원 시험, 공인회계사 시험, 노무사 시험 등 다양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다양화 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경찰 공무원 시험과 7·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이 노량진에서 신림동으로 대거 이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시생들은 노량진보다 저렴한 신림동의 물가와 노량진보다 더 좋은 신림동의 면학 분위기를 따라 신림동으로 이주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노량진의 공무원 시험학원들마저 신림동에 분점을 내면서, 신림동의 ‘공시촌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신림동 고시촌’의 또 다른 변화의 모습은 노동자, 취업 준비생,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유입이다. ‘고시원’이라는 저렴한 주거공간과 신림동의 저렴한 물가를 찾아 사회적 약자들이라 할 수 있는 노동자들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이주해오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신림동 고시촌을 구성하고 있는 대학동의 주민등록상 인구는 고시생 감소에도 불구하고 2008년 2만 3078명에서 2012년에는 2만 3283명으로 오히려 소폭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25~29세 인구가 4257명에서 3595명으로 감소한 반면, 40~44세 인구는 1654명에서 2076명으로 증가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증가한 결과이다.

 

슬럼화 되어가는 고시촌

 

‘신림동 고시촌’의 이러한 변화는 신림동이 ‘고시촌’이라는 정체성을 점차 상실하고 하나의 슬럼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주택의 노후화와 과밀 주거형태, 비위생적이고 나쁜 주택 조건, 생활환경의 악조건이라는 슬럼의 물리적 조건과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자가 많으며, 일용직 노동자 등 저임금자 및 수입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거주한다는 슬럼의 사회적 조건들을 고려하였을 때, 신림동의 슬럼화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취업과 주거문제에 부딪쳐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는 청년 세대와 싼 주거공간을 찾아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는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오늘날의 신림동 고시촌인 것이다.

슬럼화 되어가는 공간에서 청년 세대와 약자들은 더욱 더 극한으로 내몰린다. 대표적인 예가 고시촌의 매우 높은 화재 위험성이다. 좁은 언덕 골목길에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렵다는 물리적 한계와 더불어, 제대로 된 소방장치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은 비좁고 열악한 고시원 환경은 고시촌을 화재에 매우 취약한 위험공간으로 만든다. 실제로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적지 않은 수의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큰 피해를 주어왔다. 언덕이라는 공간과 고시원이라는 주거공간의 특성이 단순히 생활의 편리와 관련된 사회적 서비스로부터의 배제를 넘어, 생명을 담보하는 사회적 서비스로부터의 배제까지 낳고 있는 것이다. 고시촌은 ‘생명에 대한 위협’을 담보하고 살아야 하는 사회적 배제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열악한 환경의 신림동 고시촌은 취업문제로 인하여, 고시와 공무원 시험으로 내몰리는 청년 세대와 저임금으로 고통 받는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아픈 현실의 민낯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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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의당부설정책연구소 미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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