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칼럼2017.08.03 09:20

 

 

 

 

장 석 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미래정치센터 부소장

 

정의당의 얼굴이 바뀌었다. 이정미 의원이 새 대표가 됐다. 지금껏 진보정당을 이끌어온 분들은 대개 진보정당 바깥에서 경력과 실력을 쌓았다. 반면 이정미 대표는 순전히 진보정당 안에서 커온 인물이다. 물론 이 대표도 노동운동 경력이 있지만,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하면서부터였다. 진보정당을 통해 진보정당과 함께 성장한 첫번째 진보정당 리더십이다. 숱한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한국 진보정당은 한 단계 더 성숙해진 셈이다.

하지만 덕담만 할 수는 없는 처지다. 정의당 새 집행부가 임기를 시작한 지금은 진보정당운동의 전환기이기 때문이다.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엄청난 과제들이 밀려오고 있다. 어떤 과제들인가?

첫째,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길들어온 정치 문법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그간 진보정당은 조직 노동을 핵심 기반으로 삼으면서 리버럴(자유주의) 정당 지지층 일부로부터 표를 가져왔다. 조직 노동 내 기반은 당장의 성과가 아니라 추상적 이념을 통해 유지했고, 리버럴 정당 지지층에게는 민주대연합의 왼쪽 날개로서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 존립(성장이라기보다는) 모델은 벽에 부딪혔다. 조직 노동은 언젠가부터 사회운동의 진취성을 잃은 채 고립되고 있다. 리버럴 정당과 지지층이 겹치는 현실은 끊임없이 진보정당의 정체성 혼란을 낳는다. 촛불혁명 여파로 개혁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리버럴 정권이 들어선 상황에서 이런 한계는 더욱 절실히 와닿는다.

다른 한편으로 정의당은 촛불항쟁과 조기 대선 와중에 새로운 정치 문법의 가능성도 엿보았다. 기성 양대 정당에서 뚜렷한 대변자를 찾지 못한 젊은 세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소수자들이 진보정당 지지층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지난 20여년간 넘어서지 못한 한계를 돌파할 길이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한데 이들 집단으로부터 지지를 모으려면, 진보정당의 기존 정치 관행으로는 안 된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는 당장의 성과가 중요하다. 이정미 대표가 국회에서 이랜드 임금 체불 문제를 쟁점화한 사례의 확대, 반복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진보정당은 과거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일상 정치를 펼쳐야 한다. 나날의 성과로 새 지지층을 규합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진보정치의 전형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

둘째, 한국 사회 개혁의 다음 단계를 하루빨리 설계해야 한다. 촛불 민심은 일단 민주당 정부한테 당장의 개혁 책임을 떠맡겼다. 개혁 과제 중 상당 부분이 진보정당이 2000년대 초부터 주장해온 것이어서 진보정당으로서는 존립 근거가 흔들린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처음 주장했을 때는 근본 개혁 과제였지만, 지금은 이미 응급처방이 돼버렸다. 한국 사회의 발전과 쇠퇴 속도에 비해 너무 늦게 착수된 것이다.

이런 까닭에 문재인 정부의 개혁 약속들이 실현되더라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오히려 정부 정책이 성공할수록 곧바로 더 근본적인 다른 개혁 처방들이 필요해지게 될 것이다. 일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뤄지고 나면, 이제는 정규직-비정규직을 아우르는 노동시간 단축이 이야기돼야 할 것이다. 국공립대학 통합의 가닥이 잡히면, 그다음에는 21세기에 걸맞은 대학 교육 내용과 방식의 혁명이 의제에 올라야 할 것이다. ‘부자 증세-복지 확대’는 마땅히 ‘보편 증세-보편 복지’의 전주곡이어야 할 것이다. 진보정당은 지금부터 이런 ‘다음’ 개혁 과제들을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 개혁이 있다. 정당 정치를 살리고 대의제의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물론 진보정당은 줄기차게 이를 외쳐왔다. 하지만 개헌 일정이 맞물린 앞으로 몇 년간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이다. 선거제도 개혁의 승부를 봐야 할 시기다. 한 세대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다. 진보정당은 단순히 자기 생존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갱신을 위해 정치 개혁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하나같이 어려운 도전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그나마 촛불혁명 덕분에 ‘잃어버린 10년’을 끝냈기에 지금 이런 전환의 요구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진보’ 혹은 ‘좌파’는 본래 ‘전환’을 만드는 세력이고 그렇기에 다른 어느 때보다 ‘전환’기에 존재를 드러낸다. 이름값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원문보기: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5275.html#csidxa2bfae88c14e92ca28e4c8b331ef0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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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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