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정체성’, 새로운 세대의 활동가
- 나, 활동가, 노동자. 첫번째 이야기


*본 연재기사는 1980년대 운동부터 지금까지 활동 하고 있는 ‘활동가’와 201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활동가’의 생애를 통해 사회 변화에 자신의 삶을 투신하는 이들의 고민과 삶을 담으려 합니다.

“임금체불을 당해서 물고기를 시가로 받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야근이 즐거웠다.”

2016년 11월, 주황색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에 청년들이 모여 앉았다. 그들의 하나의 존재였지만, 두 개의 이름으로 불린다. ‘노동자’ 혹은 ‘활동가’로. 그들은 ‘2016 서울청년주간’의 세션 중 하나인 <우리, 활동가-노동자>의 토론에 참여한 ‘활동가’들이었다. “활동가라지만 항상 노동자라고 생각했다.” “임금체불을 당해서 물고기를 시가로 받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야근이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내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싶다.”, “언제까지 해야 될 지 고민이다.” 등 20대, 30대 청년들의 삶이 녹아 있는 고민들이 즐비했다.

‘공익’과 ‘사회 변화’를 향한 열망만 빼면, 그들도 엄연히 노동과 보상을 교환하는 노동자이다. 물론 여러 실험에서 보이듯, 공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경우 금전적 인센티브와 업무의 효율이 항상 비례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활동가’들이 자리를 만들어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데에는 그만큼의 오랜 시간에 걸친 깊은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월급이 아닌 ‘활동비’
“활동가도 스스로의 역량을 키울 시간이 필요해.”
“넌 참 버르장머리가 없는 거 같아.”
‘선배세대들도 답 몰라’…주체적으로 만드는 '활동가 정체성'

 


ⓒ 제 109주년 ‘세계 여성의 날’에 행진 중인 H씨와 활동가들(H씨 SNS 중에서)


'전업 활동가'의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자, 오래간만에 정시에 퇴근한 활동가 H씨를 서울시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월말에 업무가 많아 며칠 동안 늦은 밤이 되어서야 퇴근한 그의 모습은 피곤해 보였지만, 할 이야기는 많은 듯 보였다. 보통의 직장인들과는 조금 다른 30대를 살고 있는 그의 삶과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두 번의 학교, 두 개의 직장

S : 대학 입학부터 지금 단체에 오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아 왔나?
H : 처음 다닌 대학에서 몇 년간 학생회 중심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정작 수업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전공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기업 회장과 사장의 이름을 딴 강의실과 건물들에 반감을 느꼈던 것 같다. 졸업을 하면 운동을 할 때 돌아갈 곳이 있는 셈이라 졸업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학생운동에 전념하면서 여러 일을 겪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자기혐오와 좌절감을 느꼈고, 도망치듯이 학교를 떠났다. 이후 켄 로치처럼 노동자들의 영화를 찍고 싶어 영화학교로 갔다.

S : 학생운동에서 멀어지려 다른 학교로 갔다고 들었다. 이후에는 무슨 고민을 가지고 살았나?
H : 노동자를 위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조에서 활동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운동단체에 들어가 활동했다. 그러다 비정규직 노조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고, 그곳에서 노조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노조탄압으로 조합원이 자살하는 등 여러 일을 겪었다. 매일 회사 앞에서 농성 투쟁을 했고, 어려움도 많았다.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 정신적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S : 노조 활동을 중단하고 지금의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 단체에서의 활동은 어떤가?
H : 만 2년 반 정도 됐다. 우리는 이곳에서 매월 받는 돈을 월급이 아니라 활동비라고 부른다. ‘사업주’가 없고, ‘노무’를 관리하는 사람도 없고, 활동가들의 자발적 의지로 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115만원 남짓 받는다.

S : 크지 않은 액수인 것 같다.
H : 정해진 예산이 있어 올리기 쉽지 않다. 시와 정부의 예산도 받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그래서 회비, 출판, 강연, 연구 사업 수입에만 의존한다. 이처럼 재정의 한계가 있다. 후원금이 늘면 나아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단체의 성격을 바꿔서 지원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지원을 받다 보면 애초에 만든 취지와 목적과는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해야 된다. 그러면 굳이 지금 같은 단체를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거다. 이 단체의 목적은 독립적인, 자립적인 사회운동으로써 사회를 바꾸는 취지 속에서 만든 거기 때문이다. 

S :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H : 그래서 제도를 하나 만들었다. 활동 기간에 따라 월 단위 장기휴가를 지급하는 제도다.

S : 시간과 돈 중에 무엇에 대한 갈증이 더 느끼고 있나?
H : 시간에 대한 갈증이 더 크다. 쉬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공부를 하며 스스로의 역량을 키울 시간도 필요하다. 

노동자 아닌 노동자

S : 흔히들 '활동가'는 노동-보상이 교환되는 노동자의 측면과 공익을 추구하는 활동가라는 측면이 혼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H : 물론 나는 '노동자'이지만, 이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내게 '노동자' 정체성을 부여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활동하면서 이따금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런 일들이 내게 '노동자' 정체성을 갖게 한다. 단체 안에서는 노무 지시자도 없고, 내 활동은 스스로 기획하고 통제할 수 있다.

'활동가'라는 의미에 대하여

S : '활동가'라는 명칭에 ‘민주화 운동 때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노동현장에 있던 사람들’, '숭고한 가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라는 분위기가 투영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H: 그런 인식은 많은 거 같다. 시키는 대로 해야 되고, 토론문화가 없는 것도 많다. 내가 활동하는 곳은 같이 토론하고, 적극적으로 내 주장을 하고 의견이 모으면서 움직인다. 그래서 잘만 하면 자긍심도 가질 수 있다. 또 ‘활동’에 대한 규정이 예전이랑 많이 달라졌다. 저는 기준이 높았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활동가라는 걸 꼭 무엇이어야 된다는 규정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활동가를 ‘전업활동가’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체의 상근자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만의 역할과 포지션이 있다.
다만 주체적인 의미부여가 있는 것이다. 활동가는 무조건 헌신해야 한다는 이유로 노동조건이나 활동조건에 대해 군말 없이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삶과 활동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함께 조건을 바꿔보자고 이야기할 거다. 내가 빚이 많고 어려우면, 서포트를 논의할 수도 있는 거지, “활동가니깐 견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운동, 노조 있을 때 ‘견뎌’라는 압박이 심했다. 신경림의 시중에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라는 시가 있다. 훌륭한 활동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남에게는 헌신적이고, 나한테 가혹하고, 부지런한 모습들이 그것이다. 회의나 집회를 늦게 가거나 하면 굉장히 반감이 있었다. 지금은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누구든 자기 스스로 동기부여가 강하게 되는 만큼 할 수 있는 거지.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만의 타이밍이 있는 거다.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를 많이 괴롭혔던 것 같다. 강박과 규율이 너무 강해서, 흔들릴 때도 나 자신을 못 견디고 자기혐오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객관적인 조건이 안 좋기 때문에, 누구든 철인같이 할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에서 주인공으로

S : 모두가 철인 같을 수 없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H : 운동이 무너졌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기준과 전형이란 게 없어졌다. 우리 같은 젊은 세대가 새로 규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만들어 놓은 것 위에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과거의 것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새롭게 만들어 나가면 된다.

S : 선배세대에 대한 반감이나 문제의식을 느끼면 어떻게 대처했나?
H :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이해는 가지만, 반대 부분도 있다.”,  “그건 아닌 거 같다.” 등.

S : 이야기하면 수렴이 되나?
H : 직접 얼굴보고 이야기하면 심하게 “니가 뭔데?”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가끔 만나긴 하지만 그런 사람은 상종 안 하면 된다. 그런 사람들은 그 나이 때에게도 안 먹힌다. 다른 분들에겐 “그렇게 느끼실 수 있는데, 집에 가서 한 번 더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기분 나빴으면 죄송한데, 저도 생각해보겠다.”처럼 이야기 해왔다. 그럼에도 “니 말이 다 맞고, 좋은 말인데, 넌 참 버르장머리가 없는 거 같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그러면 그냥 개긴다.(웃음)

S : 반면 각종 운동을 해온 선배들에게 배울 점도 많지 않나?
H : 배울 점은 그 무수한 경험들인 것 같다. 전투, 투쟁의 경험이 많다. 선배들에겐 여러 가지 경험에서 축적된 노하우가 있다. 생각지 못한 걸 이야기해서 아이디어, 힌트가 될 때가 있다. 가끔 내가 과감하게 못할 때, 더 과감하게 하는 선배들이 있다. 통상적인 생각을 깨고 생각하지 못한 전술을 제시한다. 뒤도 안 돌아보고 몰아붙인다. 겁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게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말 겁이 없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효과가 있는 걸 보고 여러 가지를 배운다.

우리에겐 활동가가 필요해!

S : 노조나 시민단체에 관심이 없거나 정보가 부족한 시민들은 ‘활동가’가 왜 필요한 지에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활동가의 존재가치는 무엇인가?
H : 노조든 시민단체든, 어느 집단에서든 사회 변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은 ‘제도 안에 있지만 계속해서 제도 밖을 상상하는 존재’ 혹은 ‘사상과 현실 간의 거리를 좁히려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다. 특정 사안에 대해 먼저 고민하는 ‘타이밍’이 온 사람들은 타이밍이 안 온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공유하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틈을 벌려야 한다. 활동가는 벌어지지 않는 견고한 현실의 틈을 벌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S : 활동가의 자유롭고 다양한 활동과 노동권 향상을 위해 이 사회가 변화해야할 가장 큰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H : 법적 지원이 있지만, 조직이 법적 지원을 받으면 독립성이 없어지니 회의적이다. 어느 조직이든, 사회든,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지식의 차이를 극복하는 제도와 운동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적 차이가 줄어들면서, 다 주체가 되는 과정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젊은 세대의 활동가들이 비전이 없고, 성장이 없는 문제도 지식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경험도 지식도 없다. 경험적으로 안 채워진다면 다른 부분의 학습과 토론으로 메워지는 것이다. 활동가도 정치인이랑 비슷하다. 설득하고 싸워야 한다.

S : 끝으로 경제적 빈곤, 가족 등 지인의 회유, 고용 불안 등 다양한 이유로 많은 활동가들이 오래지 않아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본인은 본인의 '활동가'로서의 수명에 대해 낙관적인가?
H : 중요한 건 누가 전망을 만들어주지 않고, 선배세대들도 전망이 없다는 거다. 전망을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전망을 스스로 만드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주체가 새로운 세대의 활동가들이어야, 운동사회 안에서의 시민권이 강하게 생긴다고 본다. 선배세대한테 “전망과 권리를 달라”, “우리를 왜 끌어주지 않느냐” 보다는, 우리 세대가 우리끼리 공부 고민해서 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선배들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발언권도 만들어야 한다. 자기 계발을 할 조건을 무조건 만들어야 한다. 그게 최소한이다. 활동비 많이 받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래서 더욱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에 과감하게 말하고, 비전도 세워야 한다고 본다. 조직 안에서 비전을 찾는 노력과 고민을 했는데도 없는 경우에는, 주체적으로 집단 밖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관료화 되지 않으면서 에너지를 찾을 수 있다. 그 안에서 만들어 가는 거고 제 미래도 결정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중요한건 선배 세대들도 모르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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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의당부설정책연구소 미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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