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칼럼2016.11.25 10:22

"문재인-민주당은 '촛불'보다 <조선>이 무섭다"

[장석준 칼럼] 촛불에 필요한 것은 폭발력이 아니라 지구력

 

장 석 준(미래정치센터 부소장)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2016년 11월 12일의 서울은 경이롭기만 했다. 600년 넘는 이 도시의 긴 역사에서도 처음인 백만 이상의 인파가 시내를 꽉 채웠다. 사람의 파도 탓에 발 딛기도 힘들었지만, 어디에서도 불편함이나 짜증의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몸들은 부대끼는데도 낯선 해방감이 광장을 지배했다. 나는 이 광장의 백만 시민 중 하나여서 영광이었다.  

 

그러나 이내 밤은 깊어졌고 시계는 자정을 향했다. 백만이 모일 수 있으면 그 백만이 흩어질 수도 있다는 걸 실증이라도 하려는 듯 저마다 마지막 대중교통 편을 찾아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텅 비어버린 광장에는 박근혜가 여전히 대한민국 대통령인 채로 13일의 해가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 가슴에는 역사의 무대에 함께 했다는 뿌듯함과 더불어 뿌연 안개가 끼었다. 19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 모은 군중이 최루탄에 무참히 해산 당하던 기억을 떠올린 이들도 있었을 테고, 2008년 장마가 시작될 즈음 마지막 촛불을 태우고 기약 없이 헤어지던 때를 기억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김수영의 시로 1960년 4월의 고뇌를 전해들은 이들은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는 시구를 불길하게 읊조렸을지도 모른다.

 

찬란했던 하루를 보내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불안감과 의구심은 무거운 물음이 돼 우리를 짓누른다. 청와대 진격 불발을 아쉬워하며 SNS에 격정을 토로하는 이들의 말처럼 시민혁명의 골든타임을 영영 놓쳐버린 것일까? 12일 집회는 대한민국 시위 참여인원 기록을 갱신한 점에서나 의의를 찾을 하룻밤 축제에 불과했던 것일까? 과연 지금 우리는 역사의 길목 어디쯤에 서 있는가?

 

싸움은 이제 시작이고, 이제껏 우리는 잘 싸웠다

 

하루 앞을 내다보기도 힘든 정세 속에서 과연 이런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거나 지나쳐는 안 될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그 첫 번째는 싸움이 이제야 시작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제껏 광장의 시민들이 주인공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는 것이다.

 

JTBC의 충격적인 폭로가 있고 벌써 3주가 흘렀다. 토요일 집회도 12일이 세 번째였다. 하도 믿기 힘든 폭로가 쏟아지고 선거 때보다 더 치열한 청와대와 원내 정당들의 정치 행위가 계속된 탓에 3주가 아니라 한 달은 넉넉히 지나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체감과는 달리 우리는 아직 JTBC 폭로 직후 등장한 첫 번째 정치 국면의 여운 속에 있다. 이게 막 마감되면서 새 국면이 열리려는 중이다. 그래서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 첫 번째 국면의 쟁점은 실은 박근혜 퇴진이 아니었다. 물론 대다수 시민은 처음부터 하야/탄핵/퇴진 이외의 해법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정치권은 달랐다. 지난 몇 주간 정의당을 제외한 원내 정당들의 논란거리는 거국 내각이었다. 달리 말하면, 박근혜는 없는 셈치고(그게 가능하다면) 새누리당과 야당들이 권력을 분점하는 방안이었다.

 

누구보다도 <조선일보> 같은 보수 여론의 사령부가 이를 열렬히 주창한다. 이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박근혜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러나 이들은 박근혜의 하야로 조기 대선 국면이 열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새누리당과 야당들을 대연정으로 묶어 위기를 봉합한 뒤에 개헌을 통해 정계 개편을 시도하려 한다. 박근혜는 도려내되 박근혜 체제와 그 기획(개헌-정계 개편)은 이어가려는 것이다. 

 

정치 이론에는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처음 꺼낸 ‘수동혁명’이라는 개념이 있다. 혁명적 위기의 시기에 기존 지배 세력이 도전 세력의 일부 흐름과 요구를 흡수해서 위기를 타개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이는 지배 세력 입장에서는 가장 능동적인 위기 대응이지만, 기존 체제와 단절한 새 출발을 원하는 민중 입장에서는 새로운 지배 체제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꼴이다. 1987년 6. 29 선언 이후가 이런 수동혁명 국면이었다. 지금 <조선일보> 등은 이를 반복하려 한다.  

 

가장 눈에 띠게 이 전략의 도구가 돼 움직이는 것은 새누리당의 비박 세력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내 친박파는 이에 저항하면서도 결국은 한 걸음씩 뒤늦게 따라오는 신세다. 그러면 남는 것은 원내 야당들이다. 이들이 권력 분점안을 덥석 받아야 수동혁명 전략이 관철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3주간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대통령 퇴진은 논외로 하고 거국 내각을 둘러싼 입씨름만 계속하며 이 기조에 따라 움직여줬다. 심지어 문재인-민주당 주류는 지금도 이 궤도로부터 좀처럼 이탈하지 않고 있다. 

 

다른 변수가 없었다면, 거의 끝난 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왜? 무엇 때문에? 바로 우리들, 광장의 시민들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주인공이다.

 

1주일이 지날 때마다 수십 배로 불어나는 촛불의 힘은 청와대의 ‘괴뢰’는 몰라도 정당들에게는 확실하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수야당들은 광장의 눈치를 보며 거국 내각의 최종 서명을 미루다가 하나 둘 박근혜 퇴진 투쟁의 바리게이트 이쪽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수동혁명의 손쉬운 성공으로 끝날 뻔했던 첫 국면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우리는 아직 박근혜를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의 준비를 훼방 놓을 만큼은 강력함을 입증하고 있다.

 

촛불 시민이 바라는 다음 국면은 야당들이 새누리당과의 권력 분점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권력 배제에 과감히 나서는 것이다. 우선 새누리당과의 협의 없이 야3당 단독으로 특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야3당은 이 힘으로 과도 내각 총리도 합의해야 한다. 박근혜의 하야 선언이 늦어지면, 결국 탄핵 절차에 착수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그 잔당들은 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들의 의사 방해 따위는 촛불의 연료가 돼줄 뿐이다. 이상은 13일 정의당이 발표한 ‘질서 있는 하야 4대 실천 과제’의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이 관철되려면, 19일에도, 26일에도 광장에는 수십만, 수백만의 촛불이 타올라야 한다. 민주당, 국민의당이 거국 내각에 차마 동조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아우성이 계속돼야 한다. 대중운동의 힘이 제도정치를 거의 매개 없이 규제하는 이 예외적 국면이 이어져야 한다. 2주 안에 특검법 등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면, 26일로 예정된 다음번 대규모 집회 장소를 시내가 아니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옮기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게 다 우리가 당분간 촛불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대열을 불려가며 밀어붙여야 할 일이다. 주춤거릴 때가 아니다. 그럴 틈이 없다.

 

광장 혁명은 더 깊고 더 넓어져야 한다

 

그러고 보면 지금 촛불에게 필요한 것은 폭발력보다도 지구력이다. 박근혜를 끌어내리기까지는 몇 주가 아니라 몇 달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뜨거운’ 겨울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이미 승기는 잡았지만, 마침표를 찍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장기간을 염두에 둬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에 우리가 확인한 게 단지 박근혜를 꼭두각시로 내세운 지배 체제의 부패와 타락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수야당들의 민낯 또한 똑똑히 보았다.

 

보수야당, 그 중에서도 차기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문재인-민주당 주류는 95%의 국민이 박근혜 정부로부터 등을 돌리고 60% 이상이 하야/탄핵/퇴진에 찬성하는데도 ‘하야’나 ‘탄핵’은 입도 벙긋 하지 않는다. 이 유례없는 민심의 해일에도 이들은 오히려 기득권 세력의 눈치부터 보았다. 이 정도로 압도적인 여론조차 이들이 <조선일보>를 압도하는 용기를 내기에는 부족했다.

 

이런 세력이 집권한다고 과연 박근혜 체제와 크게 다른 세상이 열릴 수 있을까? 새누리당 집권 10년 동안 보수야당들이 진보정당 정책 중 일부를 흡수하기는 했다. 사회 개혁의 열망이 정권 교체와 동일시되면서 보수야당과 그 대권 주자들에게 대중의 기대가 온통 쏠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집권 후 개혁적 공약이 기득권층의 사정없는 공격을 받게 되면, 어찌 될까? 광장에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도 미적대는 지금 모습을 대입해보라. 답은 빤하다. 퉁명스러운 현실론을 내세우며 공약을 미련 없이 폐기해버릴 것이다. 정권 교체는 사회 개혁의 기회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광장 시민들의 바람대로 박근혜가 퇴진하고 조기 대선이 성사되더라도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수동혁명은 거국 내각-개헌 카드를 통해서는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카드, 보수야당의 집권 이후 개혁 약속 파기로 다시 한 번 승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박근혜 퇴진’이라는 첫 번째 목표에 승리한 뒤가 오히려 ‘박근혜 체제 해체’라는 궁극 목표의 실현에 더 위험한 국면일 수 있다. 촛불의 지구전을 각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구전은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할까? 우리는 12일에 그랬던 것처럼 주기적으로 중앙 광장에 모여야 하지만, 또한 그만큼의 열기로 광장을 우리 삶 곳곳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다른 나라 혁명사에는 ‘구민 협회’니 ‘평의회’니 하는 이름의 조직들이 빈번히 출현한다.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민중 스스로 토론하고 실천하는 조직들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바로 이런 조직이다.

 

이름은 뭐든 좋다. 낯선 번역어들 대신 편하게 ‘00 촛불 모임’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기왕에 노동조합, 협동조합, 농민회, 학생회, 시민단체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이들 조직이 그 역할을 맡으면 된다. 혹은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협동조합을 새로 만들어서 참여할 수도 있다. 아무튼 제도정치의 옥신각신이 계속될 겨울부터 봄까지의 시간 동안 우리는 수많은 촛불 모임들을 만들며 새 봄을 준비해야 한다.

 

촛불 모임들은 행동의 기본 단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중요 임무는 토론과 결의다. ‘박근혜 체제’, 그러니까 재벌과 비선출직 관료, 보수 언론이 민주공화국을 농단하던 이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 사회로 나아가려면 우리 주위에 어떤 개혁 조치들이 필요한지 토론해야 한다. 각각의 촛불 모임이 내놓은 개혁 방안은 엉성할 수도 있고 다른 방안과 충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모임들이 낸 개혁안을 종합한 결론은 87년 체제를 극복하는 데 가장 확실하고 뚜렷한 대헌장이 될 것이다.

 

개혁도, 개헌도 이런 아래로부터의 토론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조기 대선이 있을 테고 정당들이 선거에 뛰어들겠지만, 더 이상 기성 주류 정당의 행보와 선택에 시민들의 개혁 열망이 포획돼선 안 된다. 곳곳에 퍼진 촛불 모임들이 제도정치권과 소통하고 필요하면 이들을 협박하거나 특정 정치 세력과 동맹하면서 함께 새 권력을 만들어가야 한다. 

 

말하자면 이번의 도전은 1960년, 1987년의 혁명-준혁명에 비해 훨씬 더 깊어지고 더 넓어져야 한다. 민주주의의 위력을 폭발시킬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우리 삶 곳곳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 제도정치의 변화와 사회운동, 시민권력의 성장이 서로 밀고 당기며 수동혁명의 유혹과 함정을 뿌리치고 나아가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박근혜의 정치 생명은 이미 끝났다. 지금 막전 막후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은 박근혜 이후를 둘러싼 싸움이다. 대중혁명과 수동혁명의 싸움이다.

 

그러니 오늘 아침도 박근혜가 대통령인 세상에서 눈을 떴다고, 이번 주도 민주당의 헛발질이 반복된다고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촛불은 흔들리거나 멈칫 거릴 여유가 없다. 이제는 저물어가는 저들의 시간이 아니라 12일 자정이 지나도 닫힐 수 없는 촛불의 시간에 우리 삶을 맞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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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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