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소녀상 옆 대학생 농성단” 외로운 소녀상, 외롭지 않은 그들

 

 

매일 바쁘게 움직이는 광화문 거리, 번쩍이는 LED전광판, 황량한 불빛을 지나면, 한 명의 소녀가 앉아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같은 자세로, 언제나. 이루지 못한 할머니들의 꿈을 간직한 채로.

 

“반갑습니다.”

 

늦은 오후 4시경 도착한 일본대사관 앞, 비슷한 나이 또래의 대학생들이 옹기종기 담요 속에 모여 앉아있었다. 서울시 체감 온도 영하 25도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던 그 날, 그들은 변함없이 소녀상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입가에 밴 미소는 생전 처음 본 사람인 나에게도 기분 좋게 만들었다. 다른 곳에서 모여 하나를 지키고 있는 그들이 궁금해졌다. 나는 그들에서 우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인사를 하고 같이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웃으며 환영해줬다. 아무런 연식도 없던 사람들과 소녀상 사이에 자그마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대학생 단체, 동아리들이 연합하여 지난 달 28일 이후로 돌아가며 23일 째였다. 마침 8명의 대학생이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왔던 날이기도 했다. 칼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온기에선 훈훈함을 넘어 따뜻함이 느껴졌다.

 

“학생들, 우리가 어른으로서 미안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줄게”


경찰과 대학생들이 각자의 사명과 일로 마주보고 있는 소녀상. 가만히 있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냥 일이 있어 길을 지나가는 사람, 소녀상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 가는 사람, 그리고 학생들에게 핫팩과 간식거리를 지원하는 사람까지. 직접적으로 참여하진 않지만 많은 시민들이 응원해준다. 이 마음들은 신념과 합쳐져 싸움을 이어가는 힘이 된다. 대학생들을 보며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우리가 제대로 못해서 너희들이 고생한다는 말, 힘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그래서 이렇게라도 도와주고 싶다는 시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더 힘을 내어 소녀상을 지킨다. 이렇게 받은 핫팩과 커피는 차곡차곡 쌓이고 따뜻한 버팀목이 된다.

 

 

 

“어디서 오셨어요?” 등 소소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대단한 일을 하는 줄 알았던 그들이 가깝게 느껴졌다. 며칠 전 헤어졌다고 하는 사람부터, 밤샘으로 피곤해하는 사람 등,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다.

 

“성폭행 한 사람이, 나 이만큼 해줬으니 미안하고 합의하자. 너도 대승적으로 받아들여라 라고 말하면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5시 경. 차가운 칼바람을 뚫고 한 교회의 청소년회 청소년들이 농성장을 찾았다. 초등학생부터 고3까지 다양한 나이의 청소년들은 소녀상에 대한 설명과 위안부 합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곤 우리들 사이에 껴서 같이 자리를 만들었다. 왜 여기 있는지 같은 궁금증부터 시작해서, 중학교가 걱정된다는 소소한 고민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한 학생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저도 나중에 대학생 되면 같이 지킬게요!‘라고 했다. 다들 웃으며 ”그 때까지 이 농성이 이어지면 안돼. 내일이라도 재협상 선언하고 농성이 끝났으면 좋겠어“고 화답했다. 이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싸울 것이다.

 

 

 

18시 45분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매일 19시에 진행되는 촛불 집회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모두 담요에서 일어나 시민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시민들도 배고프고 허기진 우리를 위해 닭죽과 호박죽 커피를 저녁으로 주셨다. 자리 정리가 끝난 후, 저마다 닭죽을 먹으며 집회를 위한 마지막 준비를 마쳤다. 비록 3시간 정도 밖에 참여하지 않은 나에게도 집회에 같이하자며 닭죽을 건넸다. 닭죽의 따스함에 얼어붙었던 몸이 사르르 녹았다. 비록 촛불은 없는 촛불 집회였지만 재협상을 위한 맘 속 불꽃이 대신했으리라.

 


“제발 오늘 하루만 집에 들어가서 주무시면 안될까요?”

 

7시 집회가 시작되고, 많은 대학생들의 발언과 시민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집회가 진행되던 중 많이 본듯 한 중년 남성이 혼자서 집회장을 찾아왔다. 발언을 자처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이었다. 종로지역구 국회의원인 그는 여느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미안하단 말부터 했다. 외교통상위원회에서 일을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고, 자신들이 정치를 못한 탓에 여러분들이 추운 겨울에 오들오들 떨고 있다고, 그렇지만 최대한 대학생들이 편하게 농성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니까 하루 여관방이라도 빌려서 주무세요.” 학생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국가가 소녀상 이전을 약속한 마당에서, 섣불리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국회의원도 어쩔 수 없는 무력한 상황, 그럼에도 대학생들은 혈혈 단신으로 부당한 정부의 협상에 정당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었다.

 

 

 

누군가 시키지도 않았다. 단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협상을 가역적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모으고 있었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란 노래를 모두 부르며, 그 날의 집회가 마무리 되었다. 각 단체마다 흩어져 차후 계획에 대한 회의를 가졌다. 자리를 남아 지키던 시민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떴다. 곧 밤을 새며 그 자리를 그들을 볼 낯이 없어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와 달리 그들은 그 날 밤까지 자리를 지켰다. 날이 밝으면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은 바뀔 것이다. 새로운 사람, 그 전에 있던 사람, 지나가던 사람 모두. 그들, 우리가 있음으로 소녀상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떠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그들을 보며 집으로 향하는 열차에 죄책감과 몸을 맡겼다.

 

 

2015년 1월 21일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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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의당부설정책연구소 미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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