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칼럼2015.06.30 13:53



김정순 (진보정의연구소 사무국장)
   

지난 6월 26일 미국연방대법원은 동성커플의 결혼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두고 ‘미국의 승리’라는 성명을 냈다. 뉴스를 접하며 나는 그 나라의 인권 지수에 대해 부러움이 일었다. 더구나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동안 고단했을 당사자들을 호명하면서 모두의 승리라고 말할 때, 그 유연함이 한없이 부러웠다.


우리나라도 느리지만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난 주말동안 페이스북 페친들의 프로필 사진이 무지개 색깔로 덧씌워지는 것을 목격했다. 제16회 퀴어문화제를 축하하거나 동참 및 지지의 의미가 아니었나 미루어 짐작해본다. 2000년 이틀간 2,000명이 참가한 퀴어문화제는 횟수를 거듭하면서 올해는 3주간 2만 여명 이상이 참가하여 축제를 함께 즐겼다. 동성애자인 한 남성은 ‘엄마, 나 게이야’라는 피켓을 들고 나와 부모님께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알리는 행동을 하는 등 참가자들은 다양한 소품들을 활용하여 각자의 방식대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신선했다. 비록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보는 그날의 풍경은 다채롭고 자연스럽고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문화제를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제일 먼저 머리를 스친 건 ‘이제는 아까운 죽음이 줄어들 수 있겠구나’하는 것이었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동성애자들은 사회적 차별에 못 이겨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곤 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는 그들에게 획일적인 선택만을 강요했다. 선택을 하려야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래서 죽음으로서 저항했던 것이다. 올해 퀴어문화제의 슬로건이 ‘사랑과 저항’이었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저항’이라는 단어와 나란히 쓰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가슴이 아렸다. 수 년, 수십 년에 걸친 그들의 절규와 비명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오랫동안 비명조차 지르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문화제의 함성에 맞서 북을 치고, 장구를 치고, 춤을 추며 소음으로 덮어버리려 하는 세력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한복을 차려입고 손에는 태극기를 흔들면서 자신들의 행동이 곧 애국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나는 혐오를 숨기지 않는 채 확신에 찬 얼굴로 고함을 지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지난 28일 4 ·16연대(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가 공식 발족을 선언했다. ‘끝까지 잊지 않겠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끝까지 행동 하겠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염원이 하나로 모아진 모임이다. 부박한 자본의 논리에 어이없이 목숨을 빼앗긴 세월호 유가족 및 국민연대의 요구는 아주 단순명료했다. 먼저 400일이 넘도록 여전히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있는 사람들을 수습하라는 것, 그리고 참사의 진실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전에 실종자 가족들이 나눠주는 전단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우리는 유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에 이토록 가슴 아픈 염원이 있을 수 있을까? 그 전단을 받아들고 가슴이 턱 막혀서 한동안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이 기억난다.


오늘도 세월호 유가족들은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사회, 인권을 실현하자고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 나와 있다. 많은 사람들 및 세력들은 그들에게 이제 그만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400일이 넘도록 사랑하는 내 자식이, 내 어머니가, 내 아버지가 물속에 잠겨있는데 어떻게 그만할 수 있겠는가? 국가가 제대로 구해주지도 못했으면서 그 가족들에게 이제 비명을 멈추고 울음을 거두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그 정도로 몰염치 했던가?


노동현장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턴가 100일 이상 하지 않는 단식은 단식도 아니며 400일 이상 하지 않는 고공농성은 고공농성이 아니며 800일 이상 하지 않는 투쟁은 투쟁도 아니라는 우스겟말이 돌고 있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이 뱉어내는 비명을 들으려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을지도 모른다.


소수자 및 약자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방법은 많지 않다. 모여서 요구해야 하고 그도 안 되면 피켓을 들어야 하고 그도 안 되면 가두행진도 해야 하고 그도 안 되면 청와대 앞에라도 찾아가 고함이라도 질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잠깐의 소란스러움이, 그 잠깐의 지체가 생명을 잃는 일보다 중한 것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할 수 없다면 그들이 뱉어내는 비명마저도 그만하라고 요구하는 몰염치는 거둬들여야 한다. 그들의 억센 고함과 욕설은 그들이 뱉어내는 비명에 다름 아니라는 어느 목사의 말씀이 새겨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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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의당부설정책연구소 미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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